교육후기
교육후기
제목 | [제3회 우수강좌 에세이 최우수작]내가 변해야 강원도가 변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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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교육연구실 | 등록일 | 2016-01-26 | 조회수 | 647 | |
내용 |
선발예정인원 270명, 응시인원 5,330명. 20대 1의 경쟁률을 뚫고 시험에 합격했다. 부모님은 눈물을 흘렸고, 주변 사람들에게는 연일 축하의 메시지가 도착했다. 이제는 나의 세상이 왔다고 생각했었고, 그 누구보다 화려한 삶을 꿈꾸었었다. 하지만 그 꿈이 깨어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첫 발령부서는 세무과. 행정직이었던 나는 세법에 대해서는 접해 본 적도 없었기에 출근 첫 날부터 “당분간은 가까이도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했던 책을 다시 펴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 수습이었던 내 월급은 박봉이었고 내 통장은 통장이 아니라 텅 비어있는 ‘텅장’일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는 민원인을 달래야 할지 아니면 단호하게 대처해야 할지도 감이 서질 않았다. 때로는 자괴감이 들기도 했었다. 자연스럽게 ‘이렇게 열심히 해봐야 돌아오는 것은 항의전화들일 텐데 나는 무엇을 위해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에 빠지게 되었다. 지난 몇 년간 나의 모든 시간을 오롯이 공무원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위해서 바쳤지만 막상 실무에 들어가고 나니 나는 아무것도 할 줄 모르는, 한 마디로 풋내기에 불과했던 것이었다. 강원도 인재개발원에 도착해서 방에 짐을 풀고 지정된 장소에 올라가니 이미 나와 같이 정장 차림을 한 많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모두들 여기에서 처음 보는 사람들이었지만, 왠지 모를 동질감이 묘하게 느껴졌다. 강원도내 18개 시, 군 그리고 도청에서 모였지만 우리는 그동안 같은 목표를 위해 시간을 바쳤고, 같은 고민을 해 왔으며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스쳐 지나가면서 같은 감정을 공유했었기 때문이리라. 비단 지난날들 느껴왔었던 감정뿐만 아니라, 당시에 하고 있던 실무에서의 고민 역시 같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무언가 업무를 맡게 되면 스스로 생각해서 창의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보다는 지난번에 비슷한 업무가 있었는지부터 찾아보고 그것을 겨우 따라 하기도 벅찬, 아직은 모두들 그런 처지에 있었던 사람들이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첫 날은 간단히 교육 소개 후 버스에 올라타 서울에 있는 국립 현충원으로 향했다. 처음 교육일정을 보았을 때는 국립 현충원 참배를 위해 서울까지 간다는 것이 너무 유난을 부리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막상 우뚝 솟은 현충탑을 마주하니 나도 모르게 숙연해 졌다. 전시관을 비롯한 이 곳 저 곳을 견학하며 국가를 위해 몸을 바치신 선조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제야 우리가 왜 여기부터 와야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우리가 현충원에 온 이유는 우리의 ‘과거’를 알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공무원이라는 직업은 다른 직업과는 달리 조금은 더 엄격한 도덕률과 국가관을 요한다. 우리는 영리를 추구하기보다는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을 위해 봉사하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지난 역사는 우리의 현재를 있게 한 이유이자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는 거울과 같다. 어떤 일들을 겪어왔고, 그 때 그 분들은 국가를 위해서 어떤 각오로 어떤 일들을 했는지 설명을 듣고 전시물을 감상하면서 오만했던 생각들에 나도 모르게 낯이 부끄러워 졌다. 현충원을 뒤로한 채 다시 연수원으로 향했다. 그곳에 도착 해 저녁식사를 마치고 다시 강당에 모였다. 자치회를 구성하기 위해서였다. 첫날 자치회 구성 이후로 대부분의 일정은 자치회의 회의에 따라 돌아갔다. 자치(自治). 풀이하자면 ‘스스로 다스린다.’ 라는 뜻인데 ‘자치회’라는 단어야 학생 때부터 워낙에 자주 쓰던 말이라 많이 무뎌졌지만 이번 기회에 곰곰이 생각할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를 스스로 다스리되 그에 대한 책임 역시 스스로 져야했다. 책임이라는 말 보다 무거운 단어가 또 있을까? 물론 성인이 되면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져야 했다. 하지만 학생이라는 신분은 아직 우리를 완전한 어른으로 만들지 못했고, 때문에 그 책임이라는 아직 희미할 뿐이었다. 하지만 이제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지역을 스스로 다스려야 하는 위치에 서게 되었고(地方自治) 좁게는 읍, 면, 동민들의, 넓게는 시민, 도민들의 공직사회 전반에 대한 신뢰를 ‘책임’지게 된 것이다. 그 때는 몰랐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연수원의 전반적인 과정들을 통해 그 사실을 깨닫고 항상 ‘생각하면서 행동하게’ 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신규 연수의 꽃은 역시나 공직역할 상황극이었다. 주제만 정해져 있고 약간의 조언을 받을 뿐 대사도 행동도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히 우리가 만들어 나가야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의 공직생활에 필요한 여러 가지 지식(知識) 뿐만 아니라 지혜(智慧)역시 배울 수 있었고, 무엇보다도 이 시간들은 나의 공직에 대한 가치관 자체를 바꿔 놓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한 강사님의 말씀이 생각난다. “여러분들은 당장에는 공무원 합격이라는 작은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당장 냉정하게 현실을 보자면, 강원도의 전국에서의 발언권이나 비중을 보자면 아직은 크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번 동계올림픽이 강원도의 위상을 올리는 기폭제가 될 것이나 점화만 되고 금방 꺼져 버릴지 아니면 활활 타오르는 더 큰 불이 될 지는 결국 여러분들의 능력과 태도에 달려있다.” 그렇다. 우리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각자가 맡은 위치에서 노력을 한다면, 강원도의 위상은 지금이랑 비교도 되지 않게 올라갈 것이라고 믿는다. 2015년 12월. 교육을 다녀 온 지 반년이 지났고, 이제는 후배까지 들어왔다. 물론, 나의 업무능력이 그 4주간의 교육으로 인해서 엄청나게 극적으로 발전한 것은 아니다. 아직도 모르는 업무들을 만나면 쩔쩔매고 가끔은 어려운 민원인들이 찾아와 큰 소리를 내면 기가 많이 죽는다. 하지만 그 때마다 연수기간 중 평창 알펜시아로 동계올림픽 시설 현장학습을 갔던 때를 생각한다. 비록 내가 하는 일이 작은 일일지는 모르겠지만, 그것들이 모여 우리 시의 경쟁력이 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도내 지자체들의 경쟁력은 곧 강원도의 경쟁력이 되며 그 경쟁력으로 2018 평창 동계올림픽이라는 거대한 성과를 이루어 냈다. 그렇게 보면 내가 하는 일은 결코 작은 일이라고 할 수는 없으리라. 내가 변해야 강원도가 변한다는 말,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몸소 깨닫게 되는 아주 귀중한 4주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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